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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스카이다이빙 거북 1

by merlin시현 2023. 4. 1.



봄볕에 졸던 중 귀에 닿는 공명에 잠이 확 깨서 고개를 들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여태 몇 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울림통을 가진 동물은 거북뿐이다. 늘상 들리는 앵무와 잉꼬의 소음 사이에서 무뎌진 줄로 알았던 귀청이 아직 쓸만한 듯했다. '..어..지.'
잠결이라 몇 음절을 놓쳐 뭉뚱그려진 소리를 곱씹으며 거북사 쪽을 내려다봤다. 한 번만 더 제대로 들으면 뭐라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으레 그 귀퉁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거북이 보인다. 거북사라고 해 봤자 작은 인간들의 허리춤까지나 올 법한 울타리를 흙바닥에 정사각형으로 둘러 놓은 것이 끝인 공간으로, 거북을 존중했다면 더 성의를 보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어느 동물이건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주인 내외는 거북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해 준 데 의의를 두며 만족스러워 하는 듯했다. 나는 차라리 거북사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라고 거북에게 권해 볼까 싶기도 했다. 한가운데라면 울타리 너머로 손을 뻗어 기어이 등딱지를 꾹꾹 누르거나 먹이를 입가에 비비며 어서 먹으라고 채근하는 인간들을 피하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이였다. 그러나 거북은 구석에 머리를 처박기를 택했다. 답답한 광경이었으나 나보다 훨씬 오랜 생을 살았을 그에게 훈수를 둘 필요는 없지 싶어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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