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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이모를 찾아서 4

by merlin시현 2023. 6. 18.




이모는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고 말했다. 비싼 거 시켜도 된다며 짚어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뭘 먹는지도 모르는 채 수다를 떨고 리액션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이모가 진짜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쓸 준비를 나온 거다.. 하고 알아졌기 때문이었다. 내 이모는 어린 애들이 김밥천국 같은 데나 갈 것이지 하고 말하는 어른이 아니었다. 우리 시현이가 친구들 데리고 온다는데, 하고 쉬는 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화장도 하고 버스를 타고 맛있는 걸 사주러 달려온 것이었다.
아무튼 계속 떠든 기억뿐이다. 니 말 존나 많이 하더라, 하고 이모가 떠난 뒤 친구들이 말했다. 이모가 밥 사주러 나왔으니까 고마워서 그랬지.. 하니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저 재밌게 놀았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더 친해졌다.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된 나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 속에 아기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이모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우리는 인사동 어느 아늑한 찻집에서 만난 차였는데, 이모는 마치 호그와트 교수처럼 권위 있는 모습이었다. a4용지 두 장 분량 편지를 워드로 써서는 출력해 아기자기한 편지봉투에 접어 넣어서 나와 남자친구에게 각각 건넸다. 그리고 임신 초기 주의점 같은 즐거운 스몰토크를 나눴다. 남자친구에게는 따로 한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여자는 필연적으로 귀걸이나 반지 같은 걸 좋아하니 여유 되면 꼭 사 주라고..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아직 의문)
집 가는 길에서 뜯어본 편지 안에는 그저 다정한 조언과 격려가 가득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이모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가족들과 모든 연을 끊은 채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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