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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강 기사님 1

by merlin시현 2023. 5. 6.






지금 다니는 회사 첫 출근 날이었다. 급식 식재료 전처리가 주 업무라고 들었다. 해 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진입 장벽이 낮은 일이어서 선뜻 지원했다.
서리가 내리는 3월 초였지만 일하느라 더울 걸 예상해서 옷을 한 겹만 입고 왔더니 아니나다를까 추웠다. 락커를 배정받고 앞치마를 두른 뒤 달달 떨면서 실내 작업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안녕하세요, 하고 평소 오버하는 것보다 좀 더 오버해서 허리를 굽혔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생소한 얼굴들이 눈 앞에 수두룩한 가운데 독보적인 이가 한 명 있었다. 눈에 띄었다.
아이같은 외모를 가진.. 조그만 할아버지네, 하고 생각했다.
그분이 강 기사님이다.

강 기사님은 업무에 필요한 전처리와 후처리를 담당하신다. 깐양파와 깐쪽파를 준비하려면 양파 껍질과 쪽파에 묻은 흙을 에어 콤프레셔로 날려낸 후 손질을 해야 수월한데, 바로 그 에어건을 쥔 카우보이가 강 기사님이다. 손질 후 남는 부산물들도 경운기에 모아 싣고서 버리신다. 또한 여초 일터 청일점으로서 '남자'가 하는 일들을 하신다. 그 비중이 작지 않음에도 한편으로는 깍두기의 성질을 띠신 것 같기도 했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잘은 모르므로 마무리하겠다.
이모들은 강 기사한테는 꼬옥 인사를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강 기사님이 너무 잘 삐진다는 까닭이었다. 단단히 삐져 소리를 꽥 지르거나 홱 나갔다는 사례가 만연했다. 그래서 꼭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강 기사님!
답인사는 안녕, 보단 아녕! 에 가깝다. 아녕! 하고 뭐라 더 말씀하실 때도 있는데 처음에는 반의 반의 반도 못 알아들었다. 어..네? 하면 이모들이 빠르게 통역을 해서 알려주신다. 가끔 이모들조차 알아듣지 못했다는 눈빛이 오고가고 나는 '진짜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말씀..' 하고 안절부절 할 때도 있다. 돼써! 하고 총총 나가 버리시는 강 기사님. 새 틀니와 딕션에 그다지 초점을 두지 않은 발성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계시다. 그렇대도 내가 너무 못 알아듣는가 싶었다. 그에는 연수 이모의 말씀이 위로되었다. '강 기사 뭐라는지 하나도 몰겄어.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려?' 랑 '왜 그렸대?' 두 개 번갈아서 말하는겨. 그럼 혼자 신나서 말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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