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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강 기사님 2

by merlin시현 2023. 5. 13.


강 기사님은 편애를 하신다. 그 중에서도 연수 이모가 제일이다. 이뿌니, 로 부르신다.
나는 주방장인 연수 이모를 돕는 주방 보조 일도 하는데, 우리 둘은 직원 중식 준비와 주 1회 재가노인 도시락 반찬배달을 함께 준비한다. 연수 이모와 단둘이 주방에서 일할 때면 강 기사님의 방문이 잦다. 보통은 냉장고 속 두유를 드시려고 오시는 건데, 이뿌니가 필요해서 오시는 때도 있다. 주방 문을 기세 좋게 열어젖히신 강 기사님은 나를 한 번, 이모를 한 번 번갈아 보시며 조금 머뭇거리신다. 씨이, 씨이. 열 오르신 강 기사님 스팀이 새 나오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본 이쁜이는 '아이 또 왜 그려.' 하고 다정히 말을 거신다. 강 기사님은 스르르 성을 내기 시작하신다.
나 내일부텀 안 올라가.
왜.
아이,
하고 강 기사님은 챙겨오신 말보따리를 끌러 펼치길 시작하신다. 늘 그렇듯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다. 내가 주로 하는 리액션은 '에구..' 다. 연수 이모도 일단 쏟아지는 단어들을 조립해 맞춰 보시는 눈치다.
이모는 곧 상황 파악을 마치신다.
아 희동이 걔는 맨날 그려~
강 기사가 쫌 참지 그렸어~
탁월한 위로를 듣고 강 기사님은 조금씩 화를 가라앉히신다.
남은 스팀을 몇 차례 폭, 폭 내뱉으시다 이윽고 일터로 돌아가시는 뒷모습이 꼿꼿하다. 다섯 살 아이처럼.
너는 알아들었어? 강 기사 뭐라는지.
아니요.. 그래도 이모한테 털어놓고 다시 가벼워지셨겠죠.
그럴겨.
ㅋㅋㅋㅋㅋㅋ

연수 이모뿐 아니라 사실 거의 모든 이모들은 강 기사님이 결코 서어하지 않게끔 신경쓰신다. 미혼 총각 자그만 할아버지가 여자들 틈에서 맘 상할까 모두들.
나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를 떠올리며 웃는다.

그러나 여기까지 써 놓고 빈둥거리던 나는 어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강 기사님은 할아버지가 아니셨다. 이제 갓 예순을 넘긴 나이셨던 것이다. 대부분의 이모들보다도 동생이신.
예순은 결코 할아버지라고 칭할 수 없는 나이다. 허나 당신보다 연상인 여인 여럿 사이에서도 결코 꿇리지 않는 와일드한 외모와 성정을 가지신 바람에 내가 착각을 했다. 죄송해요.

우리의... 강 기사님은 한라산을 피우신다. 그것은 정말 할아버지 담배다.
총각이 무슨 할아버지 담배를 피우느냐며 놀리고픈 충동이 들지만 나는 꾹 참고 그저 인사를 드릴 뿐이다. 안녕하세요 강 기사님.

아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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