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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이모를 찾아서 3

by merlin시현 2023. 6. 13.




갑자기 연락한 건데도 이모는 선뜻 오케이를 보냈다. 우리는 근사한 외식을 예감하며 신이 났다. 아마 블랙스미스 갈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당시 블랙스미스는 프랜차이즈 중에서 힙한 축에 끼는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파스타랑 피자를 꼭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세련된 곳에 나와 내 친구들을 기꺼이 데려가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어 줄 한 사람을 자랑하고 싶은 거였다. 내가 원하는 건 이모였다. 이모는 머리를 쫙 넘겨 올백으로 묶으면 참 멋졌다. 상상 속 이모는 올백 머리에 새하얀 터틀넥 니트를 입고서 볼드한 반지를 낀 손을 테이블에 척, 올려놓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너희들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특히 우리 시현이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다정하게 물어왔다.

친구들을 뒤에 세워 놓고 애타게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모 얼굴을 찾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거리 맞은편에서 이모가 걸어오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이모. 이모! 하고 달려가서 꼭 안았다. 내 친구들도 소개했다. 어 그래 안녕! 하고 시원한 인사를 건네는 이모 팔에 팔짱을 척, 끼고 나는 행복했으나 일순 당황스러웠다. 이모가 많이 상하고 푸석한 머리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좀 아파 보였다. 내가 이제 그런 외적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간 내가 아는, 이모가 겪은 일들이 머리 속을 주마등처럼 스쳤다. 보통 그것들은 겪어내기 아주 힘든 일들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모 모습은 그 여파일지도 몰랐다.
일단 나는 목소리를 높여 떠들면서 이모 팔에 매달려 걸었다. 이모를 만나서 너무 좋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이윽고 이모는 우리를 한스델리로 데려갔다. 거기는 그냥 우리끼리 외식할 때 가는 곳이었다. 어른이 맛있는 것 사준다고 말했을 때 곳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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