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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이야기

이모를 찾아서 2

by merlin시현 2023. 6. 2.




동네가 떠나가라 악을 쓰는 나.... 는 왜 그렇게 운 걸까.
원래 키우면서 힘이 들면 들수록 정이 소록소록 든단다, 하고 나의 전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맞게도 이모는 자기를 잠 못 자도록 힘들게 한 조카를 가장 예뻐했다. 덩달아 이모의 딸 유선 언니도 사촌동생들 중 나를 제일 예뻐했다. 압도적인 편애였다. 늦은 밤, 내 사촌 지아가 '유선 언니는 시현이랑만 놀아.. 나랑은 안 놀아..' 라고 외숙모 품에 안겨 울먹이는 것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어쩔 도리 없이 자는 척만 했다. 나는 언니가 해 준 팔베개에 머리를 뉘고 누운 참이었으니까. 내 얘기를 제일 먼저 들어 주고 누가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시현이가 제일 좋다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유선 언니는 여신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가 젤 좋다는데 어떡해.. 미안하지만.. 미안하지만..
유선 언니랑 시현이는 예전에 같이 산 적이 있어서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지.. 하고 외숙모는 지아를 달랬다.
내 말이 그 말이었다..

언젠가 이모가 이모 남편이 던진 화분에 다리를 맞고 수술을 한 뒤 퇴원하는 날이었다. 우리 엄마랑 내가 이모를 데리러 갔다. 엄마는 운전을 하고 나는 뒷자리서 이모와 유선 언니 사이에 앉아 드라이브를 즐겼다. 유선 언니와 함께 서로 얼마나 숨을 참을 수 있는지 코랑 입을 막고 시합을 하던 차에 실수로 이모의 다리를 손으로 쳐 버렸다. 순식간에 약간 튀어오른 이모는 소리쳤다.
야! 이모 여기 다리 수술해서 아프단 말이야. 치면 안 돼!
이모가 내게 화를 내다니!
나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얼어붙었다. 유선 언니도 조용해졌다. 한참 후 이모는 내 표정이 몹시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이모의 다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엉거주춤 포옹을 하면서 마음이 풀어졌다. 이모가 진짜로 화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 후 이모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혼, 재혼, 두 번째 남편의 사고사, 그가 사실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까지..
나는 그것들을 어깨 너머로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삶은 흥미진진한 사건들로 가득했고 내 몫의 아픔과 사랑을 소화하는 데 여념없었다. 어쨌든 이모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쾌활했고 지갑을 모두 털어 천 원짜리 몇 장을 꼬옥 용돈으로 주는 어른이었다.
한 번은 내가 친구들을 데리고 우리 이모를 보러 가자며 인천에 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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